전남 강진군 인구수, 인구변화, 읍면별 인구 현황
전남 강진군 인구 32984명입니다. 30년 전 비교 45% 이상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농업, 어업 기반 도시로 미숙한 층 유입에서 아주 불리한 산업구조입니다. 30년간 인구 약 45~46% 감소했으니 감소폭은 아주 큽니다. 요즘 해마다 600~900명 정도의 인구 감소가 이루어졌습니다. 보통 이농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다. 한계에 이르러 완만해지는 경우도 많은데 이탈률은 높은 편에 속합니다. 이에 강진군도 인구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강진군은 빡빡한 살림을 가진 도시에 가깝습니다. 재정자립도라는 관점에서 보시면 우리나라 최하위안 오르내릴 정도로 열악합니다. 그럼에도 여러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강진 최초의 서원인 서봉서원(현재 박산서원)에 향사된 청련 이후백의 문집.
그래서 사회적으로 별 유명하지도 않은데, 혹은 원래 그 지역 출신도 아닌데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하여 그 조상을 서원에 배향했다. 그러다. 보니 인물을 숭상하던 숭고한 정신에서 출발한 서원이 어느덧 국고 잠식, 당론 조성, 대민 작폐 등의 폐단을 자아내는 원흉이 되고 말았다. 문제가 아닐 수 없어 숙종 때에는 금설령이 내려졌고, 영조 때에는 철폐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마침내 흥선대원군은 권력을 잡자마자 양반들의 반발을 무릎 쓰고 1864년에 훼철령을 내려 우리나라 1천 5백개 가운데 47개소만 남기고 모두 철폐했다. 그 가운데 호남 지방에는 광주의 포충사, 장성의 필암서원, 정읍의 무성서원 등 3개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럴때 강진에 있던 서원도 모두 철폐되었습니다.
남설, 훼철, 복설, 방치의 반복
이와 같이 강진 땅에는 1590년에 처음 등장한 서원이 1860년에는 12개로 불어났다. 이것은 한마디로 정상을 이탈한 남설이었다. 이런 남설 현상은 전국적이었다. 당파간 정쟁이 그것을 부추겼다. 그래서 그 지역 출신도 아닌 사람들이 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강진 서인⋅노론계 사람들이 남강사를 창건하여 송시열을 배향한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또한 문중간 경쟁도 한 몫을 했다.
행정사의 제향 홀기. 제사 순서를 적어 놓은 문서입니다.
여기에는 이후백 등과 성리학을 연구한 김량, 이괄의 난 때에 반란군을 진압합니다. 순절한 김호광과 그의 동생 김신광이 배향되어 있습니다. 김량을 흠모하여 원근의 학자들이 운집하여 대촌을 이루니 마을 이름이 군자리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훼철 이후 복설되고 군자서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823년에는 군동면 화산리에 정유재란 때에 순절한 윤신, 윤치경, 운이경, 윤익경, 윤동철 등 해남 윤씨 5인을 기리는 화암사(花岩祠)가 창건되었습니다.
윤신은 아들 윤동철, 조카 윤치경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성삼재 아래쪽에서 왜군과 싸우다. 함께 순절했다. 1858년에는 옴천면 척동 상곡에 문옹, 문빈, 문구연 등 남평 문씨를 배향하는 상곡사(上谷祠)가 창건되었습니다. 문옹은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고위직에 올랐고 도학으로 사림의 추앙을 받았습니다. 문빈과 문구연은 하나하나씩 문옹의 아들이고 손자입니다.
서원은 강진의 인물 창고
4개에 불과하던 서원이 19세기에 접어들자 급격하게 늘어나게 됩니다. 1800년에 군동면 풍동리에 이순신 외에 명랑해전을 승리로 교육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운 강진 출신의 무장 김억추를 배향하는 금강사(錦江祠)가 창건되었습니다. 훼철 이후 강진읍 영파리로 옮겨 복설되었습니다. 1803년에는 중공 주자, 충청도 출신 송시열, 광주 출신 박광일이 배향된 남강사(南康祠)가 창건되었습니다. 초기에는 기사환국 때에 제주 유배가던 중 송시열이 머물며 강학했던 것을 기리기 위해 백련사에 자리를 잡았다가 현재의 강진읍 교촌리로 옮겨졌다.
훼철 이후 남강서원으로 복설되었으며, 남당포 앞 바다에 떠밀려 온 주자갈필목판(지방유형유산 제114호)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1804년에는 강진에 살고 있는 경주 이씨라는 사람 후손들이 자신들의 선대인 고려말 학자 이제현, 선조대의 명신 이항복을 배향하기 위해 구곡사(龜谷祠)를 창건했다.
강진군 읍면별 인구수, 인구변화
1읍 10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읍면 중 유일하게 군동면만 인구가 증가했으며 기타 모두 감소했습니다. 강진읍은 총 521명이 감소했지만 64세 미만 인구로는 916명이 감소하여 오히려 고령층은 더 늘어났습니다. 강진군에서 강진읍이 가장 미숙한 도시였는데 빠르게 고령화되어 갑니다. 군동면은 인구가 증가했으며 64세 미만 인구에서 대부분이 증가했으니 낙관적 신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도시재생사업등의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외 면 단위 소재지들은 모두 인구가 감소 중이며 미숙한 층 인구 감소, 노령층인구 증가라는 고질적인 사안을 가지고 있습니다.